▲박진석 기자

대한민국은 현재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89개 시군이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며, 특히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과 고령화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나 산업 유치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 회복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전략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이다. 특히 지역 고유의 역사, 전통, 예술, 자연환경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콘텐츠화할 경우, 관광·창업·일자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본 오카야마현의 작은 섬 나오시마는 한때 산업화 실패로 인구가 급감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베네세재단과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협업으로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나오시마는 세계적인 예술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폐공장을 미술관으로 개조하고, 섬 전체를 예술작품으로 구성한 이 프로젝트는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며 지역 경제를 되살렸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한때 화물 열차가 다니던 고가 철로였으나, 2009년 시민단체의 주도로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이 공간은 산책로와 예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며, 주변 부동산 가치 상승과 상권 활성화에 기여했다. 문화예술이 도시의 낙후된 공간을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다.

경남 통영시는 ‘통영국제음악제’와 ‘오픈스튜디오’ 등 지역 예술가와 협업한 문화행사를 통해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유산과 해양문화, 예술가 유치 정책이 결합되면서 통영은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관광 수입과 창작 생태계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문화예술은 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 인프라의 질과 지역 특화 콘텐츠는 지역 소득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공연예술, 축제, 창작 공간 등은 관광 수입뿐 아니라 창업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대학로 공연예술의 경우,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인근 상권의 매출 증대와 부동산 가치 상승을 이끌었다. 이는 문화예술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도시 전략의 성공 여부는 ‘지역 고유성’에 달려 있다. 단순히 유명 작가나 대형 전시를 유치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지역의 역사, 풍경, 사람, 이야기 등 ‘로컬리티’를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콘텐츠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산시는 온천, 외암민속마을,은행나무길, 이순신 장군의 유산 등 풍부한 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예술 프로젝트, 체험형 관광, 창작자 유치 정책 등이 결합될 경우, 아산은 문화 중심 도시재생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 기반 도시재생은 민간의 창의성뿐 아니라 정책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지정 사업’과 ‘생활문화센터’ 구축 사업은 지역의 문화 창조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회혁신센터 등과의 협업을 통해 장애인·청년·예술가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유도하고, 포용적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문화예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지방도시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경제를 움직인다. 특히 청년층의 유입과 창작 생태계의 구축은 지방소멸을 막는 핵심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