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아산 배방읍의 맹씨행단은 황금빛 은행잎으로 물들며 역사와 계절이 어우러진 풍경을 선사한다. 조선 초기 명재상 고불 맹사성이 후학을 가르치던 이곳은 650년을 견뎌온 은행나무와 현존 최고(最古) 민가가 자리한 공간으로, 고즈넉한 가을 나들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맹씨행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쌍행수’라 불리는 이 나무는 맹사성이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행단’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수차례 자연재해와 병충해를 견뎌낸 은행나무는 여전히 매해 가을 노란빛으로 물들며 그 생명력을 증명한다.
은행나무 옆에는 고려 말에 지어진 고택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로 평가되는 이 집은 재상 집안의 고택임에도 불구하고 규모와 구조가 소박하다. 낮은 처마와 단정한 선에서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맹사성의 삶의 태도가 읽힌다. 뒤편에는 맹사성과 그의 조부, 부친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가 있으며, 조금 더 걸으면 황희·맹사성·권진 삼정승이 함께 심었다는 ‘구괴정’에 닿는다.
맹씨행단의 가을 풍경은 배방산 단풍과 맞물려 더욱 빛난다. 고택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울긋불긋한 산자락과 은행나무는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정취다.
맞은편 고불맹사성기념관에서는 맹사성의 일대기와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백옥으로 만든 횡피리와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의 동상은 그의 청렴하고 소박한 삶을 상징한다. 현재 기념관에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신창맹씨 온양댁’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1년 대전 유성구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맹사성 증손녀의 묘가 확인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가 공개됐다. 훈민정음 반포 40여 년 뒤 작성된 이 편지는 남편 나신걸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아내에게 보낸 것으로, 한글이 조선인의 일상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2023년 보물로 지정된 이 편지는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 밖에도 조선 전기 여성 복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홑저고리, 솜치마, 무명 바지, 장의 등이 함께 전시돼 500년 전 여성의 삶과 정서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