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충청남도 전역에 쏟아진 기록적 폭우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삶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다. 서산과 예산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수많은 피해지 주민들은 복구의 첫발도 떼지 못한 채 절망과 고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아산시 곡교리와 염치읍, 음봉면 등지에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마을 전체가 물속에 잠기는 도심형 침수가 발생했다. 침수된 주택과 농가에서는 가전제품이 고철로 변했고, 농기계는 유실되거나 고장나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장을 찾은 주민들은 “삶 전체가 무너졌다”며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충남도에 따르면 25일 기준 수해 피해액은 총 3,253억 원에 달한다. 공공시설 2,426억 원, 사유시설 827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아산시는 단일 시군 기준 534억 원 피해를 입어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그 뒤로 ▲당진시 429억 원 ▲홍성군 293억 원 ▲천안시 197억 원 ▲공주시 192억 원 ▲서천군 158억 원 ▲청양군 126억 원 ▲부여군 108억 원 순이다.
이는 각 시군의 특별재난지역 지정 기준 ※예를 들어 천안·아산 142.5억 원, 당진 122.5억 원, 공주·서천·홍성 102.5억 원, 부여·청양 82.5억 원—을 모두 초과한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이들 지역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았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주택 복구 지원 기준은 ▶ 완파: 최대 1,600만 원▶ 반파: 최대 800만 원▶ 침수: 최대 200만 원과 같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질 복구비용이 이 기준을 2~5배 이상 초과한다고 분석한다.
피해 유형지원금액 (현행 기준)추정 복구비용은▲단독주택 완파1,600만 원4,000만 원 이상▲침수 가전·가구200만 원300~600만 원▲농기계 유실없음최소 500만 원 이상을 지원한다.
“1,600만 원으로는 전세 보증금도 못 낸다”, “200만 원으로는 냉장고 하나도 교체 못한다”현장 주민들의 호소는 깊은 상실감을 말해준다. 특히 완파 기준이 까다로워 벽체·기초·지붕 등 구조적 손상이 동시에 발생해야만 적용되기 때문에 다수의 침수 피해 주민들이 지원 자체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서산과 예산이 지정됐으나, 같은 수준의 피해를 입은 아산시는 빠졌다. 시의회는 즉각 정부에 선포를 요청했으나, 정부는 “전국 기준에 미달”이라는 이유로 지정 불가를 통보했다.
결국 복구는 주민들의 몫이 됐다. 아산시민 자율봉사단, 지역 청년단체, 종교계가 앞장서 자발적으로 폐기물을 수거하고, 토사를 제거하며 응급 복구에 나섰다.
충남도는 이번 폭우로 지방하천 302건, 소하천 616건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중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 하천은 23곳에 달하며, 단순한 기능 복구를 넘는 대규모 사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해당 구역은 집중호우에 상습 침수된 바 있으며, 배수펌프·저수지 등의 시설도 노후돼 복구만으로는 재발 방지가 어렵다.
충남도는 관련 하천과 수리시설 개선에 총 4,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26일 행정안전부 중앙합동조사단 충남 방문에 맞춰 박정주 행정부지사는 다시 한 번 8개 시군의 신속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공식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특별재난지역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복구의 실질 주체는 민간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 건설기업: 중장비 및 폐기물 수거 인력 제공▲ 가전대기업: 침수 가전 무상 수거 및 일부 교체▲ 지역 단체: 텐트형 임시 거처 운영, 식료품 제공▲ 종교계: 예배 공간 개방, 상담 프로그램 운영등과 같은 복구 참여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충남도는 이를 중심으로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을 구성해 복구 체계 강화를 시도했지만, 신속성과 지속성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원봉사는 일시적이고, 기업은 전략적이어야 한다”며 "민간 복구 참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은 단지 국가가 사고를 인정하는 행정 절차일 뿐이다. 실제로 주민들의 삶을 복구하는 것은 자원과 연대,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민간 협력이다.
기록적 폭우가 남긴 삶의 파편을 다시 엮는 일은 행정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젠 정부와 지자체의 한계를 넘어, 기업과 단체의 따뜻한 기획과 실천이 회복의 전환점이 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