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사람을 원한다고 말한다.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귀농·귀촌을 장려하고, 정주 인구 확대를 정책 목표로 내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귀농·귀촌인을 맞이하는 지방행정의 태도는 정반대다. 사람을 부르는 정책과 사람을 내쫓는 행정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소멸 지역으로 들어오는 귀농·귀촌인은 대부분 산지나 농지와 맞닿은 공간에서 삶을 시작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곧바로 등장한다. 산지법, 농지법이 정주 목적의 생활 행위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하면서, 행정은 지원자가 아니라 단속자의 얼굴로 바뀐다.
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산림 훼손을 막고, 농지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방치된 토지가 늘어나는 지역에서, 이 법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사람이 떠난 땅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법이, 정작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순간에는 벽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귀농·귀촌인은 투기 세력이 아니다. 대부분 생계를 걸고 들어오는 생활 정착형 인구다. 그럼에도 지방행정은 “법에 안 된다”는 말로 모든 판단을 멈춘다. 행정의 역할은 법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법의 취지 안에서 지역 현실에 맞는 해석과 조정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의 소극성이 아니다. 더 깊은 원인은 감사와 책임 구조에 있다. 규제를 완화하거나 유연하게 적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감사 리스크를 지자체와 담당 공무원이 감당하지 않으려는 구조 속에서, 가장 쉬운 선택은 ‘불허’다. 그 결과 귀농·귀촌인은 지역을 떠나고, 지방은 다시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
지자체장은 인구소멸을 국가적 위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다. 사람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행정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어떻게 인구소멸을 막겠다는 것인가. 정주를 막는 규제 행정은 어떤 홍보 정책보다 강력한 ‘유출 정책’으로 작동한다.
해법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법은 일정 범위 내에서 예외와 재량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결단하느냐다. 인구소멸 지역에서는 개발 논리보다 정주 논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산지와 농지를 지키는 것과,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대립 개념이 아니라 조정의 문제다.
지방행정의 역할은 단속이 아니라 설계다.
귀농·귀촌인을 잠재적 위법자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지역을 다시 살리는 정책 파트너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현장의 용기가 아니라, 지자체장의 책임 있는 리더십이다.
인구소멸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행정은, 어떤 지원 정책을 내세워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지방행정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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