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공간인 현충사가 가을밤, 다시금 빛으로 깨어났다. 2025년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6일간 펼쳐지는 ‘현충사 달빛야행’은 단순한 야간 개방을 넘어,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는 ‘이순신의 자취를 걷다’를 주제로, 고즈넉한 야경과 첨단 미디어 기술, 전통 체험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초롱등을 손에 든 시민들의 행렬이다. 부드러운 불빛 아래 천천히 걷는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부모, 연인의 손을 꼭 잡은 커플,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달빛야행을 즐기고 있었다.
현충사 경내는 밤이 되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조경은 은은한 조명 아래 더욱 깊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람객들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미디어파사드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장면에 빠져든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 장면과 생애가 건물 외벽에 투사되며, 역사적 감동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야간 조명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현충사 정문, 충무공 동상, 연못가 등 주요 지점마다 설치된 조명은 공간의 깊이를 살리고, 관람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조명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들의 모습은 축제의 또 다른 풍경이다. 삼각대를 세우고 가족사진을 남기는 모습, 친구들과 함께 셀카를 찍으며 웃음 짓는 장면이 이어졌다. SNS에 올릴 사진을 고르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는 모습은 축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현충사 경내에서는 무료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스탬프 투어’는 관람객들이 지정된 장소를 돌며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현충사의 주요 공간을 탐방하게 만든다. ‘과거로의 여행’은 AR 기술을 활용해 이순신 장군의 시대를 재현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역사적 장면을 증강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AR 포토존’에서는 전통 복식을 입은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함으로써 역사적 공간과의 교감을 유도한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교육적 효과도 높아, 가족 단위 방문객의 만족도가 높다.
현충사 외곽, 곡교천 야영장 일대에서는 다양한 경외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유료 체험으로는 ‘반짝반짝 조명볼 만들기’, ‘양모펠트 키링’, ‘달빛조명 마시멜로비누’, ‘나무피리 목걸이’, ‘드림캐쳐’, ‘아크릴 무드등’, ‘태평소 만들기’ 등이 운영되며, 가격은 3000원에서 5000원 사이로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무료 체험으로는 ‘한지탈 만들기’, ‘실팽이 만들기’, ‘버나놀이(접시돌리기)’, ‘국궁체험(활쏘기)’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특히 ‘청사초롱 대여’는 행사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초롱을 들고 걷는 시민들의 모습은 축제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푸드존은 곡교천 야영장에서만 운영되며, 현충사 내부는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다. 푸드존에서는 지역 특산물과 간편식이 판매되며, 관람객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즐기며 축제의 여유를 만끽한다.
한가족는 “초롱등을 들고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어 좋다”며 “올해는 조명이 더 화려해져서 사진 찍기에도 정말 좋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시민는 “SNS에서 보고 일부러 내려왔다”며 “현충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몰랐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야간 음악회가 열리는 무대에서는 국악과 현대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이 펼쳐졌고, 관람객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조선시대 복식을 입은 배우들이 행사장을 거닐며 관람객과 교감하는 퍼포먼스도 몰입감을 높였다.
올해는 관람객 편의를 위한 인프라 개선도 눈에 띈다. 당초 공사로 인해 사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현충사 주차장은 일정 조정을 통해 추가 확보되었고, 곡교천 제2주차장과 야영장 주차장도 임시 개방됐다. 특히, 곡교천 주차장을 이용하는 관람객을 위해 현충사 사거리에서 정문까지 전기 셔틀버스가 운행되며, 행사장 주변 갓길 주차는 집중 단속된다.
이러한 조치는 지난해 약 6만 명의 방문객이 몰리며 발생했던 교통 혼잡을 최소화하고, 보다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재)아산문화재단 유성녀 대표는 “현충사 달빛야행은 단순한 야간 개장이 아니라, 아산의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한 대표 야간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며 더 많은 시민이 편안하게 달빛야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아산만의 독보적인 문화관광형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현충사 달빛야행은 단순한 야간 개방 행사를 넘어, 지역의 역사와 문화, 시민의 감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축제로 진화하고 있다. 아산이라는 지역의 정체성과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축제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을밤, 초롱불을 따라 걷는 이순신의 길. 현충사 달빛야행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문화의 길을 시민들과 함께 걷고 있다.